인터뷰

‘프리즌’ 한석규 “연기, ‘완성’보다 ‘행위’가 중요하죠” [인터뷰]
2017. 03.17(금)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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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나현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죠.”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배우 한석규(54)는 영화 ‘프리즌’(감독 나현, 제작 쇼박스)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묻자 ‘인연’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냈다. 한 번의 무산이 있었던 영화인만큼 인연이 없이는 영화를 완성하기 힘들었을 터다.

“‘상의원’ 전, 2013년에 나 감독이 같이 작품을 해보자고 시나리오가 미완성이던 상태에서 제의를 해왔다. 이후 1년 정도 준비하다 무산됐다. 서로에 대한 배려심으로 8개월 이상 기다렸고 ‘상의원’이란 작품의 제의가 왔다. 8개월 넘어 10개월에 들어가서는 ‘상의원’이라는 작품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하며 잘 헤어졌다. 그 뒤 나 감독은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온 작품이 ‘프리즌’이다. 나 감독이 나이가 많은데 신인감독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설움을 잘 아시느냐. 설움이라기보다 아픔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대를 올리며 시나리오 작가가 나온 걸 본 적 있나. (나 감독이) 10년 넘게 시나리오를 쓰다 감독 데뷔는 5년 정도 걸린 것 같다.”

‘프리즌’은 감옥에서 세상을 굴리는 이들의 절대 제왕과 새로 수감된 전직 꼴통 경찰의 범죄 액션. 밤이 되면 죄수들이 교도소 밖으로 나가 완전범죄를 만들어낸다는 설정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석규는 죄수들을 진두지휘하는 권력자인 ‘절대 제왕’ 익호를 연기했다.

“(익호에 대해 감독과) 이야기를 별로 안 했다. ‘이게 왜 나냐’고 물었다. 나 감독과 그 전 몇 년 동안 볼 시간이 있었다. 작업을 못 하다 ‘상의원’을 하고 두 번째 시나리오를 줬을 때 기뻤다. 단숨에 읽었는데 ‘쉽지 않겠구나. 내가 입기 쉽지 않은 옷이구나’ 했다. 내가 서울 토박이라 사투리 연기를 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 있는데 익호란 캐릭터가 그런 거다. 익호란 인물을 어떻게 만들까 생각하다 때마침 하이에나의 생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있어 봤다. 수놈이 비참하더라. 천덕꾸러기였다. 모계 사회로 이뤄져 수놈이 최하층이었다. 여왕은 자기 무리의 수놈과는 짝짓기를 안 한다. 본능적으로 종족 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일 거다. 하이에나가 입이 찢기고 눈이 빠져도 살아있더라. ‘저게 익호다’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며 익호란 인물을 만들어본다고 발버둥 쳤다. ‘눈알을 하나 뽑을까’라는 황당한 제의를 하기도 했다.(웃음)”

극 중 익호는 악명이 높지만 그의 과거 행적을 다루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석규 역시 긍정적이다.

“과거 장면이 없는 건 좋은 것 같다. 다뤄도 5분 정도 함축적 신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구현하기 쉽다. 과거를 상상할 수 있으니 그 점이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싶다. 영화는 시나리오로 봤을 때와 완성본을 눈으로 봤을 때가 완전히 다르다. 더 좋은 경우도, 너무나 부족한 경우도 있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영화를 통해 지금껏 해온 역할 중 가장 악한 역할을 맡은 그는 익호라는 인물을 잘 표현하고자 감독과 조율을 거치고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기도 했다.

“나 감독과 조율도 해 보고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는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크 원’을 해버리면 그런 게 있다. 하기 전에 머리로 어떤 신을 어떤 식으로 (연기)할지 생각하는데 해보면 ‘이게 아니다’하는 게 느껴진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것 같다. 노래를 불렀을 때 ‘큰일이다’ 하고 느껴질 때가 있잖나. 연기자는 라이브가 아니라 또 해볼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연극이 어려운 거다. 다시 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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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는 답이 없다’는 그는 자신이 꼭 도전해보고 싶은 제작 방식을 통해 그 같은 생각을 관객과 동료들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60분짜리 중편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해 전혀 모르는 두 팀이 서로 어떻게 작업하는지 모른 채 같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 60분은 A팀 먼저, 그 뒤 60분은 B팀의 작품이 나가는 걸 해보고 싶다. 같은 글로 연출자 연기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걸 꼭 해보고 싶다. 관객도 동료들도 다르게 표현되고 접근한다는 걸 느낄 거다. 어떤 한 신을 만드는데 답이 없잖나.”

서울 토박이인 그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환경이 배우로서의 한계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당시 그런 한계를 깨려 했던 그는 결국 자신을 만든 환경에서 벗어나기보단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바탕에 더 쌓아가는 것이 현명한 길임을 깨달았다.

“서울 종암동 우리 집에서 1964년 막내로 태어나 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전에는 싫어서가 아니라 내 한계를 깬다는 의미로 벗어나려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고 그걸로 더 완성한다는 생각을 한다. 해보고 싶은 영화가 많다. 74년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폭력적인 선생님을 만났다. 어린이에게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다. 상상할 수 없는 학교에서의 폭력이 가능했던 건 1974년도라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 시대를 산 내가 그걸 벗어날 수 있겠나. 그걸로 연기를 통해 사람을 만들어가는 거다.”

그는 후배 김래원에 ‘배우는 마흔 넘어서부터’라는 말을 했다. 이와 관련, 마흔 이전과 이후의 자신의 연기를 비교하기도 했다.

“전에는 내가 연기하는 게 보기 싫었다. 눈이 멍해 보였다. 요즘 좀 봐줄 만하다. 관객으로서 내가 연기하는 눈을 보면 이제 좀 사연이 담겨 보인다. 눈으로 뭔가를 담아내는 것 같다. 뭘 보든 안 보든 대사 없이도 눈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 같다. 마흔 정도는 넘어야 눈에 담기는 것 같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칭찬에 난색을 표하는 그는 연기에 있어 ‘잘한다’ 보다 ‘다르다’가 더 맞는 말이라 믿는다.

“연기는 그 사람만의 것이다. 그 사람만이 하는 것이 있다. ‘연기를 누가 잘하나?’ 하는 건 ‘고흐가 잘 그리나 고갱이 잘 그리나’를 묻는 것과 같다. 그 사람만이 느끼는 게 있을 거고, 그 사람이 해 보는 거다. 난 서울 토박이다. 평생 도시에서만 살았고 나와 전혀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낸 배우는 나와 다를 거다. 세계를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수많은 후배가 우러러보고 관객들이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지만 늘 자신의 연기에 아쉬움을 갖는다. 물론 자신의 연기에 만족했다면 그가 지금처럼 ‘국민배우’ 타이틀을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배우가 이야기하듯 만족이라는 건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연기에 정확한 답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그는 단지 ‘연기를 하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완성이 없는 거니까. 완성시킬 필요도 없다. 꾸준히 하는 것뿐이다. 하는 게 중요하다. 이루고 완성하는 건 하나도 안 중요하다. 뭘 해낸다는 것에 젊은 시절 정신이 많이 팔려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별거 아니구나. 하는 게 중요한 거구나’ 싶더라. 못할 때까지 하는 게, 하는 행위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그가 ‘완성’보다 ‘행위’에 초점을 맞추게 된 건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다.

“나이 먹어가며 자식도 낳고 죽음도 보고. 지금은 사는 쪽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세월이 흘러간 다음 죽음 쪽으로 시선이 가잖나. 주변을 보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좀 달라진다. 플레이어이고 싶은 거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난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영화든 드라마든 계속 무대가 주어지고 내가 생각하는 걸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게 많다. 계속할 거다. 한국 영화에서 못다 한 게 아직 많다.”

여배우가 한 명도 출연하지 않은 이번 영화와 관련, 여배우가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에 대해 그는 ‘사랑’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점점 극장가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랑’이라는 주제‧소재의 이야기를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란 게 그렇잖나. 하고 싶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무대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하고 싶다고 무대가 마련되는 게 아니다. 무대란 건 너무나 많은 요인이 들어가 있다. 흥행에서부터 여러 요인이 있잖나. 요즘은 사랑이라는 것에 있어 필요가 없는지 듣고 싶지 않은 건지 할 필요가 없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여배우 무대가 좁아지는 것 같다. 내 생각은, 인간이 가장 많이 해야 할 이야기가 ‘사랑’이라 생각한다. 사랑만큼 중요한 소재가 없다. 남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이야 말로 영원한 주제‧소재다. 해도 끝이 없다. 사랑이란 감정은 어떤 한 감정이 아닌 것 같다. ‘증오’라면 단편적 감정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모든 감정의 종합체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의 덩어리가 사랑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이란 주제‧소재는 해도 끝이 없다. 다 다르니까. 증오‧경멸‧눈물‧설렘 등 다 다른 사랑을 경험할 테니까.”

한때 ‘가짜’라는 것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그는 당시 자신이 하는 연기가 다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2002년 초반, 가짜만 잡고 진짜인 것처럼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는 결국 가짜도 나쁜 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전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20~30대 때엔 내 나름의 생각으로 추상적 단어에 매달려서 한 것 같다. ‘뉴 코리안 시네마’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했다면, 문제는 가짜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가짜를 하고 있으니 상대의 액션을 받아야 하는데 상대가 가짜다. 가짜의 액션을 받아 내가 리액션을 해야 하니 힘들었다. 내 리액션이 가짜니 상대가 내게 하는 액션이 오겠나. 그런 의미로 구차했던 느낌이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가짜 놀음인데 여기서 하려 하는 이 이야기도 가짜여 버리니 힘든 거다. 가짜 중 허무맹랑한 건데 그걸 해보겠다고 노력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가짜 놀음이 꽤 괜찮은 거다. ‘아트’라는 일은 가짜만 갖고 하는 일이다. 가짜가 그리 나쁜 건 아니다. 진짜로만 이야기하면 할 수 없다. 어떤 때는 그게 어렵다. 진짜를 진짜로 이야기하면 너무 어려워 관객이 모른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게 진짜 어려운 것 같다. 연기도 어렵게 하는 게 안 어려운 것 같다. 어떤 관객이 봐도 다 알 수 있게 하는 게 쉬운 게 아닐 거다. 남녀노소 한살부터 백 살까지 보면서 다 알게, 그만큼 쉬운데 정확하게 전달되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지난 1990년 KBS 성우 22기로 입사해 이듬해 MBC 탤런트 공채 20기로 재입사한 그는 27년의 활동을 거치며 연기를 해 왔다. 최근까지도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 활발히 활동하는 그는 오래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제가 한국 사람이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좁게는 서울 더 좁게는 종암동에서 64년에 태어나 관객분들과 살아가는 내가 여러분과 인연이 됐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건가가 중요해요. 안 할 수도, 못할 수도 있을 텐데 그때까지 해보는 거예요. 백 점짜리는 없겠지만 점수도 조금씩 높여가면서.(웃음)”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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