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열’ 이제훈, ‘첫사랑男’→‘불량 청년’ 도전으로 쓴 성장사 [인터뷰]
2017. 06.19(월) 17:49
이제훈
이제훈
[시크뉴스 김다운 기자] “제 안에서 꺼내서 보여주고 싶은 게 아직도 많아요”

지난 2007년 단편영화 ‘밤은 그들만의 시간’으로 데뷔한 배우 이제훈은 단역, 조연을 거쳐 원톱 주연 배우의 자리까지 올랐다. 동성애 연기부터 불량청소년, 형사, 탐정, 독립운동가 등 다양한 연기로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하는 그는 도화지 같은 얼굴에 수많은 색깔을 담아내며 넓은 그릇의 배우로 성장했다.

지난 16일 서울시 중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제훈이 영화 ‘박열’ 라운드 인터뷰를 위해 시크뉴스와 만났다.

‘박열’은 1923년 도쿄, 6천 명의 조선인을 학살한 관동대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앞서 ‘사도’ ‘동주’ 등으로 역사 속 인물을 주로 다뤄왔던 이준익 감독은 역사 속에 감춰져왔던 박열이라는 생소한 인물을 꺼내 영화화하는데 도전했다. 평소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던 이제훈은 이 감독의 부름에 망설임 없이 응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일반적인 상업영화의 느낌이 아니었다. 내용의 흐름들이 ‘동주’라는 영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표현 방식의 결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윤동주라는 인물은 잘 알고 있는데 박열이라는 사람은 저도 생소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인물에 대해 알게 됐고 깊이 탐구하는 과정에 있어서 많이 놀라운 순간들이 있었다. 이야기 자체가 인물을 다른 팩션으로 포장하거나 꾸미는 부분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발췌한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아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컸다”

극 중 박열은 ‘조선시대 최고의 불량 청년’이라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다. 일제강점기 현실 속에서 일본인에게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박열의 행동도 낯설뿐더러, 불량하고 가벼워 보이는 언행 속에서도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진심을 담아야하는 만큼 배우의 입장에서도 박열은 표현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이전 작품과는 다르게 ‘박열’에서는 집중도가 상당했다. 그전에는 신의 해석이나 연기의 방향성이 충분치 않다면 그냥 한번 해보고 방식들을 갖춰나갔는데 촬영할 때 테이크도 여러 번 가지 않고 시간적인 부분이 여유가 적었다. 그래서 잘해내야겠다는 생각이 상당했고 박열이라는 인물의 상태를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촬영에 임했을 때는 그 부분에 대해서 내려놓고 저를 간단명료하게 만드는 순간이 필요했다. 저는 박열이라는 인물이 굉장히 소년 같기도 하고 카리스마 있게 타오르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하고 있다고 봤다. 그래서 연기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고 잘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매 순간 끊임없이 쫓아왔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특히 일본어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해야 하는 신은 이제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평소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그는 대사를 잊어버리는 악몽을 꿀 정도로 부담을 느꼈지만 함께 촬영했던 재일교포, 일본인 배우들의 도움으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시나리오에 일본어 대사가 많아서 부담감이 컸다. 특히 공판 신에서는 한국어로도 하기 어려운 장면인데 되게 어려운 단어를 써서 일본어로 하는 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일본어를 잘 하는 배우 분들께 도움을 받았다. 문장, 문단, 단어 하나하나 다 녹음을 부탁드렸다. 어느 날 공판 신을 찍는 꿈을 꿨는데 슛 하고 대사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나더라. 완전 멘붕이었다. 꿈에서 깨고 안도감보다는 절망감이 컸다. 그래서 깨고 나서 베갯잇을 적셨다”

‘박열’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일제에 맞선 한 청년의 삶을 그린 듯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깊이 있게 다뤄진다. 아나키즘이라는 공통된 신념으로 하나가 된 두 사람은 연인간의 그 흔한 스킨십 없이 오로지 정신적인 사랑으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간다.

특히 심문 과정에서 박열이 후미코에 대해 “내가 그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녀의 주체적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하는 부분은 그가 후미코를 인간적으로 얼마나 존중하고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보면 동거하자는 게 첫 장면부터 나오고 손을 잡거나 포옹을 하는 것도 없다. 그래서 감독님께 후미코와 박열이 직접적으로 교감하는 신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견을 말씀드렸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그런 부분이 없어야 된다고 하셨다. 이들의 사랑에 대한 가치는 플라토닉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중요했다. 인간 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서로를 존중한다는 것. 그 부분에서 또 한 번 놀랐고 우리도 배워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배우자를 만나는 데 있어서도 외모적인 끌림도 중요하지만 평생을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서 신의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훈은 박열과 후미코의 관계를 그리는 데 배우 최희서의 도움이 컸다며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열’을 통해 생애 첫 주연을 맡은 최희서는 오히려 여유롭고 안정된 연기로 이제훈을 이끌기도 했다.

“최희서라는 배우가 가깝게 다가와 줬고, 오히려 제가 선배로서 이끌어주고 안내해줬어야 하는데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직접 손을 잡거나 포옹하지는 않지만 뭔가 교감하는 한 순간은 있길 바랐는데 박열이 잡혀가는 장면에서 후미코가 ‘나도 불령사야’하면서 눈을 찡긋 한다. 그 다음에 감옥에서 다시 일본 내각에 지목됐을 때 박열이 ‘이번엔 따라오지마’ 하면서 같이 찡긋 한다. 최희서씨가 먼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나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그게 연기하면서 놀라운 경험이 된 것 같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이제훈은 ‘박열’ 촬영이 끝나자마자 “끝났다~”라며 괴성을 질렀다고 밝혔다. 그만큼 ‘박열’은 그에게 힘들고 어려운 도전이었다. 지난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첫사랑 남’의 이미지를 얻은 그는 이후 전혀 다른 캐릭터와 작품을 연기하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쉬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 배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열정은, 대중이 이제훈에게 많은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분명히 어떤 역할을 잘 하고 편하게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있다. 그런데 저는 아직도 제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품적으로 봤을 때 아직도 도전하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나길 원한다. 분명 그게 만족스럽지 못하고 깨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 한다”

‘박열’은 이준익 감독의 차기작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올 여름 화제작으로 손꼽히는 ‘옥자’ ‘트랜스포머’ ‘리얼’ 등과 개봉시기가 겹치면서 만만치 않은 경쟁을 치르게 됐다. 이제훈은 경쟁작에 대한 걱정을 솔직하게 전하며 ‘박열’이 관객들에게 편안한 영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경쟁작에 대한 걱정도 있긴 하다. 후미코와 박열이라는 인물이 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냥 즐기시기만 해도 충분히 이 영화를 재밌게 보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생각의 관념이 충분히 채워진 사람들이다. 이런 청춘들의 뜨거움을 두 인물을 통해 한 번 지켜보셨으면 한다. 역사공부를 해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은 하지 마시고 그냥 둘의 모습을 즐기셨으면 한다”

오는 28일 개봉. 러닝타임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김다운 기자 news@fahsionmk.co.kr /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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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박열 |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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