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살인자의 기억법’ 원신연 감독 “소설·영화 강점 합쳐 또 하나의 성취 이루고 싶었죠” [인터뷰]
2017. 09.06(수) 15:32
시크뉴스 포토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쉽지 않은 선택, 도전이었죠.”

지난 31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원신연 감독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제작 쇼박스·W픽처스)을 연출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김영하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40분 만에 독파하고 영화화를 결심한 그는 제작 과정을 ‘퍼즐’에 비유했다.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컸던 영화다. 안 맞으면 다시 쏟았다. 과정이 힘들었는데 그만큼 즐거웠다. 그 과정이 상당한 에너지를 발현시키기도 한다.”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건, 원작과 비교될 수 있다는 점, 문학적 표현을 통해 주는 분위기나 느낌을 영화로 옮겨야 한다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어렵고 힘들 수 있다.

“소설에서 쓰인 문체가 굉장히 간결하기에 어려울 거라 느껴지지만 의외로 그 문체가 영화문법에 있어 콘티를 짤 때 굉장히 간결하게 콘티 안에 들어간다. (소설의) 문체와 흐름을 집어넣는 것보다 오히려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고 나서 만드는 과정이 고민됐다. 소설에서 차용한 대사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만큼 소설 자체가 영화화하기 좋게 쓰였다 할 수 있다.”

원작 소설의 경우 속도감 있는 문체를 지녔다. 영화는 상대적으로 호흡이 느리다. 여기엔 관객이 배우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고 전체 맥락을 이해하게 하려는 원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소설과 영화에서 ‘같지만 다른 요소’가 굉장히 많다. 기술적 문제도 문제지만 영화란 매체의 구성적 부분이 중요하다고 봤다. 호흡을 오히려 소설보다 느린 작전을 구사했다. 소설은 거침없이 넘어간다. 영화에서는 소설의 빠른 문체 속도보다 호흡이 중요하다. 호흡은 적어도 장르영화를 즐기는데 저해되지 않는다면 최대한 느려야 한다. 이 영화 자체가 소설의 문체와 문체 사이를 채우는 간극이다. 관객은 영화를 따라가고 맞추려 애쓸 수밖에 없다. 관객의 시선이 가고 귀로 들어야 하는데, 호흡이 빠르지 않은 가운데 지켜본다. 전체 맥락을 간극으로 볼 수 있다. 배우의 눈에 집중하게 만든 거다. 세 사람의 눈을 통해 보고 전체 맥락을 이해하게 된다.”

병수(설경구)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는 설경구의 내레이션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내레이션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내레이션에 확실한 기준이 있다. 두 축에서 보자면 1인칭 내레이션과 마치 대사를 하는 것 같은 부분인 3인칭 내레이션이 있다. 장르적 문법이 파괴되는 시기인 것 같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꼭 문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 관객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과감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 게 영화 추세이기도 하고. 내레이션 활용방식에 있어서는 새 문법, 하나의 시도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자기 심리를 표현한다든가 설명이 긴 장면을 효과적으로 짧게 설명하는 등 여러 내레이션의 기능이 있다. 이 영화는 전혀 다른, 주인공의 기록이기에 그렇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기억법은 병수의 내레이션이다.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되뇌는 거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법은) ‘미래의 일기’다. 뭘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한다. 거기 쓰인 걸 자기가 읽는 것일 수도 있다. 하나의 장치이기보다는 병수의 현재의 복기이며 미래에 기억을 되새기는 거다.”

원 감독은 소설을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게 새로운 경험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고 관객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하고 싶었다고. 원작을 읽지 않고 영화를 접한 관객도 재미있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신경 썼다.

“화면에 소설이란 장르를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영화 자체만의 표현기술이 있다. 그 부분에서 접점을 만들기 쉽지 않다. 소설에서 느껴지는 지역적 공기가 영화에서 느껴지기를 바랐다. 병수와 은희가 사는 집의 묘한 공기, 느낌이 영화만의 색채로 반영되길 원했다. (원작을 읽은) 독자가 배신감 없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소설의 공기를 버려야 한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쇠락한 도시의 비주얼이 괜찮을 것 같았다. ‘저기 사람이 살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비주얼을 떠올렸다. 그런 공기가 채워졌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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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수와 태주의 첫 만남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일어난다. 안개 낀 도로에서 두 사람의 차량 접촉사고가 나고 병수는 태주의 트렁크에 있는 무언가로 인해 그를 의심한다. 이때 병수는 태주를 처음 보고 그에게서 살인자의 눈빛을 읽어낸다. 이것이 실제 가능할까.

“소설에 ‘살인범은 살인범을 알아본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어떤 언어로 표현하긴 힘든 개념인 것 같다. 그런 눈빛을 배우들과 이야기하면서 요구할 수 있는 방식, 모니터를 보며 ‘이 정도면 적절한 것 같다’라는 기준이 있다. ‘세븐데이즈’를 준비하며 그 이후 3, 4년간 실제 살인사건의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법정을 굉장히 많이 찾아다녔다. 실제 살인선고를 받았던 피의자들을 많이 봤는데 말투, 모습, 특히 눈을 봤다. 대상의 취재를 하며 실제 대상을 보면 연출할 기회가 생겼을 때 가까운 모습을 나타낼 수 있어서 그때 많은 도움이 된다. 실제 살인 판결이 나고 그들에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진단이 내려지는 과정을 봤다. 그들의 눈은 정말 잊히지 않는다. 내가 만약 정말 살인자를 지나가다 만난다면 난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병수 태주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본능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설경구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17년 전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를 연기하며 극을 이끈다. 25년 차 배우이자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그에게도 쉽지 않은 역할이다. ‘알츠하이머’에 ‘연쇄살인범’이라는 두 가지 설정 모두 만만치 않다.

“보통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리신 분들의 공통된 대부분의 특징이 극단의 표현을 많이 하신다는 점이다. 그 극단이란 게 행동적 극단, 감정적 극단이 있다. 병수는 감정적 극단과 행동적 극단을 계속 표현한다. 본인이 계속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억이 돌아왔을 때와 잃었을 때의) 상황이 바뀌는 데 있어서의 기준이 없다. 어떻게 바뀌어야 바뀌었다고 할지 고민했다. 눈 밑 경련이 일어나면 치매 각성에 들어간다는, 관객이 나름 편히 받아들이는 장치를 해놓긴 했지만. 이를테면 설경구 씨가 느닷없이 ‘지금은 어떤 상태냐?’며 질문을 많이 하더라. 태주만 알아보기도 하고 은희 태주 둘 다 못 알아보기도 하는 등 매 시퀀스마다 다르다. 태주만 알아볼 때의 날카로움 수위들, 이런 게 예민하게 표현돼야 (관객 입장에서) 모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들쑥날쑥하면 집중할 수 없으니까. 그런 부분이 어렵더라. 쳐다보는 시선 각도 등을 모두 미세하게 연출노트에 기록했다. 대부분 설경구 씨가 잡아갔고 문득 물어볼 땐 ‘감독이 정신 차리고 있나’ 하는 것 같았다.(웃음) 귀에서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중반으로 넘어갈 때 병원에 갔더니 신경을 과하게 쓰는 것 같다며 약 지어 드릴 테니 호전 안 되면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 처방전 받고 약국에서 약을 타서 숙소로 가 약 종류를 들여다봤더니 치매치료제더라. 웃겼다.”

김남길이 연기한 태주는 병수에게도 관객에게도 혼란을 주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원 감독은 연쇄살인마와 병수의 망상 가운데 태주의 정체를 모호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병수에게 몰입할 수 있도록 했다.

“(힌트를) 살짝만 주는 게 오히려 병수에만 몰입할 수 있는 편집의 방법이었다. 이야기 자체가 병수 태주의 대결 구도 보다는 병수의 알츠하이머, 망상, 각성으로 흘러가기에 중심이 병수에 맞춰져야 했다. 이 영화의 태주를 병수 시각에 맞춰야 했던 이유다.”

앞선 기자회견을 통해 ‘살인자의 기억법’을 ‘소설과 가장 가깝고도 먼 영화’라 표현한 그는 소설과 영화의 강점이 합쳐져 또 하나의 성취를 이루는 것이 목적임을 밝혔다.

“도전에 대한 즐거움이 있었지만 두려움도 있었어요. 베스트셀러 소설이고 마니아들이 배신감을 느꼈을 때에 대한 걱정이 있었거든요. 그 걱정을 상쇄시키는 게 목적은 아니에요. 이 소설이 가진 강점이 영화적 강점과 합쳐져 또 하나의 성취를 이루는 게 목적이죠. 소설과 가장 가깝고도 먼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권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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