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한산성’ 이병헌 “위험한 동시에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인터뷰]
2017. 10.02(월)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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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치우친 감정이입이 없었다는 게, 자칫 잘못하면 이 시나리오가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난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이병헌은 영화 ‘남한산성’(싸이런픽쳐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 객관적으로 읽었으며 다 읽은 후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치우침이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누구에게 마음이 가는지 생각했을 때 치우침이 전혀 없었던 것은 그로서는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선악이 있고 응징해나가는 그런 재미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누군가에게 감정이입이 돼 그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게 영화의 힘이라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 말에 마음이 간다. 그것이 반복되면 위험하고 어찌 보면 그게 이 시나리오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 김훈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 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어를 최대한 그대로 살리려 노력한 이번 영화의 대사는 배우에게도 생소한 면이 있었다. 주화파 최명길(이병헌)과 척화파 김상헌(김윤석)이 논쟁하는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긴 대사를 주고받는 가운데 박해일과 삼각 구도를 이루며 호흡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초반에 시나리오를 보고 리딩을 하면서 워낙 힘든 어휘도 많고 아주 생경한 단어도 많아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본 볼 때 자세가 좀 달랐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대사 외우는데 아주 힘든 건 없었다. 김윤석과 절정에 치닫는, 서로의 소신에 대한 싸움을 하는 신은 워낙 길기도 했지만 중요한 부분이라 나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 감독, 배우가 다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준비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신을 찍을 때 모든 분이 날이 서 있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받아쳐 주거나 앞에 계속 있었어야 했는데 두 사람이 중요한 연기를 하는데 혹시나 중간에 실수라도 할까 해일 씨가 더 긴장했다. 오히려 다 끝나고 해일 씨가 굉장히 피곤해했다.(웃음)”

현장은 화기애애했지만 최명길 김상헌의 논쟁이 절정에 달하는 장면을 촬영할 당시, 현장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그날 기본적으로 정말 화기애애했다. 대신 중 연세 지긋한 선배님들이 계셨다. 대신 중 연극을 하신 분들이 많아 공통점이 많았고 사람이 많다 보니 늘 이야기꽃이 피었다. 그런데 그날 촬영할 땐 좀 많이 긴장해서 인지 분위기가 유독 달랐다.”

면면이 화려한 출연진으로 인해 관객의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반면 배우의 입장에선 부담감도 있지 않았을까.

“새롭게 작품을 하게 되면서 스태프, 배우의 조화를 미팅 때 보게 되는데 그때 기대감과 긴장감이 반반인 것 같다. 처음 호흡을 맞추고 어떤 케미가 있을까에 대한 걱정 기대 설렘이 있고 과연 우리 케미가 잘 맞을까에 대한 걱정도 한다. 그런 것들이 뒤섞인 묘한 흥분이 있다. 어제 선배 한 분이 말씀하셨다. 배우들이 작품 안에서 생각보다 만나기 힘들다고. 동감이다. 나뿐 아니라 배우들이 (활동을) 오래 해도 못 본 분들이 많다. 그러고 보면 정말 만나기 힘든 것 같다. 만나고 싶은 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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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자신에게 울림을 주느냐가 작품 선정 기준이라고 말했다.

“슬픈 영화도 여러 형태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남한산성’의 경우 울림이 어떤 슬픈 영화보다도 깊고 클 거라 생각했다. 내가 (시나리오를) 읽은 느낌 그대로를 이야기한다면, 가상의 이야기이거나 엔딩을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게 아닌, 이미 있었던 사실이기에 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는 명대사가 많다. 그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대사는 뭘까.

“워낙 좋은 대사가 많은데 어제 뒤풀이에서 그런 얘길 했다 영화 ‘남한산성’ 안에서 작업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부분은 ‘상헌은 유일한 충신이옵니다. 저는 이제 만인의 역적이옵니다’라는 대사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지만 난 어제 영화를 처음 봤다. 어찌 보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부분은 ‘우리 백성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라고 칸(청 황제)에게 말하는 부분이다.”

‘남한산성’은 일찌감치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고 기다려온 기대작이다. 150억 원 규모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인 데다 화려한 캐스팅으로 주목받았다. 여기에 추석 특수가 겹치면서 천만 영화에 등극할지 관심을 모은다.

“관객이 많이 드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지만 이 영화가 정말 좋은 영화였다는 얘기를 듣는 것이 난 정말 좋다. 천만 넘는 것은 축하할 일, 좋은 일이지만 정상적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천만을 넘고 쉽게 머릿속에서 이야기와 이미지가 날아가 버리는 것 보다는 천만이 안 넘더라도 계속 회자되고 그 이미지와 정서가 남아있는 게 좋은 것 아닌가.”

그의 전작인 ‘광해’의 경우 관객이 함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있지만 ‘남한산성’은 경우 치욕적 역사를 조망한다. 이병헌은 흥행 면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음에도 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흥행 면은 제작자 투자자의 문제지만 굉장히 리스키한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난 ‘남한산성’이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아 더 좋았다. 이야기들이 늘 승리의 역사만을 고집하는 데 차라리 이렇게 실패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또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선택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남한산성’을 영화화하겠다고 한 사람도 참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극 중 최명길은 살아야 길이 있고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최명길이 마지막으로 인조를 간곡히 설득하는 순간의 대사는 그와 감독의 고심 끝에 탄생했다.

“감독님에게 부탁해 조금 수정한 대사가 있다. 상헌과 부딪혔을 때 마지막으로 왕에게 ‘임금이 무엇이옵니까?’라고 시작하는 부분이다. 상헌이 직접적이라면 명길은 자기감정을 눌러 최대한 예의에 벗어나지 않게 은유적으로 얘기하고 감정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게 꾹꾹 눌러 돌러 이야기한다. 명길도 인간인데 한 번쯤은 터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이 뭐냐. 백성을 살려야 하는 것 아니냐. 오랑캐 가랑이 한 번 지나가는 게 그렇게 힘드냐’하는 말인데 감독님이 그걸 두고 어떤 좋은 말이 있을지 한 달 이상 생각했다. 촬영 며칠 전 조금 고쳐진 그 단락 대사를 내게 주셨다. 원래는 왕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가슴 허리 언저리를 쳐다보지만 처음으로 구부렸던 등을 세워 앉아 ‘임금이 무엇이옵니까’하는 부분을 말한다.”

좀처럼 다루지 않는 치욕스러운 역사인 병자호란을 다룬 ‘남한산성’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뭘까.

“이 영화가 어떤 답을 주는 영화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 맞닿아 있는 점이 많아 ‘저렇게 유사한 상황이 380년 정도 전에도 있구나 ’ 하며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볼 수 있고 좀 더 현명한 답을 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최명길을 연기한 그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매력에 관해 물었다.

“백성들을 다 살려야만 한다는 그런 큰 뜻을 가지고 있는 상헌 명길의 굉장히 다른 소신 가운데 한쪽의 손을 들어 줄 수 없다지만 나도 약간 백성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쪽인 것 같다. 가장 인간적으로 개인적으로 매력이 풍기는 건 그 와중에 ‘궁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상헌은 절대 버리지 말라. 그는 유일한 충신’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성적으로 판단해 나와 의견을 완전히 달리하는 상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명길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화친을 주장한 주화파지만 마지막에 인조가 청의 황제에게 절을 할 땐 눈물을 쏟아내는 최명길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렇게 이성적이고 웬만하면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끝까지 주장하는 역이었기에 명길이 끝까지 만약 슬픔 아픔을 참고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인조(박해일)만큼이나 가슴이 찢기는 사람이 명길 아니었을까. 실제 왕이 이마를 땅에 찧고 명길이 삼배를 고하라고 한 건 아니지만 그 모습을 눈으로 봤을 땐 또 다른 모습일 거라 생각한다. 거기서 많이 감동을 주지만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명길 목놓아 울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소리는 못 내지만 그동안의 모든 감정이 뒤섞여 터져 나오는 울음 같다.”

그는 최명길이 아닌 김상헌 역할을 제안받았더라도 응했을 거라 말했다. 방법이 다를 뿐, 두 신하 모두 나라를 위하는 마음만은 같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상헌을 연기하라 했어도 상헌을 연기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읽고 이 영화가 주는 게 어떤 소신, 신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둘 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큰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큰 이야기 안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뿐인데 시나리오를 읽고 정말 50대 50이었다. 누가 더 옳다는 게 없었다. 상헌을 연기하라 했어도 연기 했을 거다. 역할을 결정하고 한참 촬영하다 끝나고 영화인들이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의외였다. ‘네가 상헌을 할 줄 알았다’고 하더라. 그리고 영화사 측에선 ‘안 할 줄 알았는데 명길을 결정해 줘 고맙다’고 하더라. 듣다 보니 ‘상헌을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길이 좀 더 안 좋은 역할인가?’했다.(웃음)”

그는 명길 상헌이 다른 성격과 다른 면을 각각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두 신하가 각각 다른 매력을 지녔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상헌은 할 말을 다 하고 스트레이트 한, 단순한 성격이지만 결이 다른 신을 보여주잖나. 따뜻한 아버지 같은, 인간의 면을 보여주는 시퀀스도 있고 날쇠(고수)와의 우정 같은 면을 보여주는, 다각도로 보여주는 신들이 분명 있긴 하다. 그런 게 상헌의 이 영화에서의 매력이고 장점인 것 같다. 명길 또한 짧게지만 수어사 이시백(박희순)과 친구로서 나눈 대화도 있고 유일하게 적장을 만나는 부분도 있고 물론 거기서 명길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나름의 다른 매력을 감독님이 생각한 것 같다. 분명한 건 상헌은 다른 인간을 조금씩 보여주며 풍성해진 건 분명 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영화에 대해 관객에게 해주고픈 말을 남겼다.

“저 자신도 좋은 영화, 의미 있는 영화를 찍었다고 생각해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참 좋은 영화구나’ 생각해요. 관객에게도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였으면 합니다. 비교할 대상은 없지만 호흡과 영화 정서와 전체적 분위기가 참 다르구나 하는,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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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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