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남한산성’ 황동혁 감독이 밝힌 ‘말(言)’에서 ‘말(馬)’까지 [인터뷰]
2017. 10.03(화)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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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아주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2014)의 황동혁 감독이 ‘남한산성’을 통해 첫 사극에 도전했다. 소설가 김훈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속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한 47 일간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황동혁 감독을 만나 영화 ‘남한산성’(제작 싸이런 픽쳐스)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남한산성’은 겨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토론은 뜨겁다. 그렇게 뜨거운 얘기를 하며 입김이 펄펄 난다. 무겁지만 절제돼있고 아주 잘 다듬어져 있지만 또 그 안의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요동치는 감정의 기복이 느껴졌으면 한다. 억누르는 것 같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그런 것이 보이는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

‘남한산성’은 굴욕의 역사인 병자호란을 다룬다. 승리의 역사도 영웅을 조망하는 소재도 아닌, 슬프고 치욕스러운 소재를 150억 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여 만든 대작이다. 어찌보면 용감한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정작 황 감독은 “상업적 요소를 배제한 적 없다”고 말했다.

“상업적으로 찍었다. ‘명량’같이 이겨서 환호성을 지르는 역사가 아니라 조선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라 영화 자체가 상업성이 있을까 하고 묻는 것 같다. 굳이 패배의 역사를 영화관까지 가서 봐야 하느냐는 건데 그렇기에 더 몰랐던 이야기다. 임진왜란 삼대 대첩 거북선 학익진 같은 건 많이 안다. 하지만 병자호란은 나조차도 이전에 잘 몰랐던 거다. 심지어 삼전도 굴욕에 대해선 모르는 친구가 대부분이다. 비록 아픈 역사라 해도 몰랐던 일을 알게 해주고 눈뜨게 하는 게 역사라 생각한다. 380년 전 일어난 일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상업적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남한산성’은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김윤석 이병헌, 여기에 박해일 박희순 조우진 등 충무로에서 연기력과 티켓파워를 동시에 인정받는 배우들을 모은 그야말로 ‘명품 캐스팅’이다.

“캐스팅이 끝난 순간 연출의 80%가 끝났다. 그 역을 잘 할 수밖에 없는 분들을 모아놨기에 관객 같은 입장에서 촬영이 즐거웠다. 특히 마지막 상헌 명길의 배틀은 연극처럼 찍었다. 두 명을 동시에 카메라로 한 번에 찍어 가장 현장성을 살리는 방법을 택했다. 끊지 않고 양쪽에 두 사람의 모니터를 놓고 봤다. 진짜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감독임을 망각하고 잠시 관객이 됐다.”

그는 두 세 테이크만에 촬영을 끝냈다. 배우들은 그의 칼 같은 사전 준비에 놀랐고 그는 배우를 믿었다.

“준비도 많이 했고 그리 잘 하는 배우들을 모아놨는데 여러 번 할 필요가 있나.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니 더 찍을 필요가 없었다. 전의 작업에서 더 찍었나 보다. 바로 ‘끝’ 하니 놀라더라. 쓸데 없는데 힘 낭비하는 걸 아껴 다른 일에 쓰자는 주의라 쓸데없는 불안감으로 더 하진 않는다. 즐거웠다. 배우들이 방향을 잡아 충분히 준비하면 한두 테이크에 좋은 연기가 나온다. 그게 베스트다. 더 할수록 가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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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고증에 힘쓴 진중하고 묵직한 정통사극이다. 그는 ‘재미’를 주는 영화를 만드는 전형적 공식과 장치에 의지하지 않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심을 용감히 따랐다.

“솔직히 한국에서 너무 영화를 만드는 전형적 공식·장치가 있잖나. 좀 억지이고 과장되더라도 반드시 웃기고 뒤에 음악 강하게 넣고, 센 폭력이 들어가야 든지 하는 건데, 오래 과잉되게 사용된 게 아닌가. 외국의 저 좋은 영화들은 그런 장치 없이 너무 멋지게 잘 만들어 ‘멋지다’ 하며 잘 즐기는 영화가 나오는데 한국은 좀 벗어나는 용기를 내지 않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첫 영화를 찍고 10년, 네 편째 영화를 찍고 있다. 이제 한 번쯤 벗어나 도전할 때 아닌가 싶다. 나 정도 위치의 감독이 나서서 더 이상 그런 장치에 의존하지 않고 벗어나서 후배가 따라오는 사례를 만들고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완벽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순수한 욕망, 욕심이다. 어찌 보면 그런 장치가 너무 없어 상업영화가 아니라 느끼는 것 같다.”

영화를 촬영하며 그는 두 가지 큰 난관에 부딪혔다. 바로 ‘말’(馬)과 ‘날씨’다.

“다시는 말이 나오는 영화는 찍지 않겠다. 말은 정말 다루기 힘든 동물이다. 날씨는 ‘북문전투’에서 정말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처럼 혹한의 추운 겨울을 표현해야 하는데 입김도 눈도 얼음도 계속 생각보다 담기 쉽지 않았다. 정말 온난화를 실감했다. 생각보다 눈이 많이 안 오고 더워져 얼음이 얼지 않아 송파강 장면은 많이 기다렸다. 강이 얇게 얼어 걱정했다.”

남한산성을 둘러싼 전투 가운데 가장 큰 전투인 북문전투. 영의정 김류(송영창)가 300명을 성 밖으로 내려보내 치러진 이 싸움은 그에게도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싸움이 됐다.

“가장 어려운 촬영이었다. 한 시퀀스 찍는 데만 열흘 이상 소요됐다. 십몇 회차 찍었다. 기마대가 벌판에서 조선 조총 부대와 격돌하는 그 장면만 6일 촬영했다. 언덕에서 조선군이 모두 몰살당하는 장면을 이틀 찍었고. 물리적으로 굉장히 많이 동원됐다. 말 60마리, 엑스트라 300명 이상, 굉장히 많은 장비 등 물리적 공세가 엄청났던, 신경 많이 쓴 장면이다. 이 영화를 처음 만들때 ‘말(言)’에 대한 영화라 생각했는데 이건 ‘말(馬)’에 대한 전쟁 영화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말 때문에 힘들었다. ‘말’이 ‘말’을 듣지 않더라. 말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 ‘액션’하면 놀라 딴 데로 가거나 안 가거나 풀 뜯고 옆 말을 발로 차는 애도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몇 날 며칠 찍었는데 날씨가 정말 자주 바뀌는 지역이어서 해 떴다 비 오다 했다. 날씨가 일정해야 했기에 거기 맞추느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모든 스태프 배우 엑스트라가 총력을 기울여 어렵게 찍어낸 장면이다. 그만큼 완성도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장면이다. 한국 사극이 그 정도 전투신을 구현한 건 못 봤다 생각한다. 경마·승마 말 중 고령이라 못 쓰는 말이 현장에 많이 온다. 걷고 뛰는 훈련은 됐는데 영화 현장은 처음이라 같이 움직이는 말끼리 영역 싸움, 서열정리를 하려고 한다. 현장 경험이 많지 않거나 같이 있던 말이 아니면 마음대로 안 됐다. 한국에서 그리 많은 말이 동시에 전투장면에 투입된 건 거의 처음이다.”

그는 지금의 정세가 병자호란 당시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드 북핵 등 점점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 강대국의 신경전이 과열돼 380년 전 병자호란 당시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비슷해져 걱정·불안이 들기도 한다고. 영화가 정치 이야기와 결부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 거부감이 있진 않을까.

“정치 이야기가 안 나올 순 없는 것 같다. 이왕 나올 거면 이 영화가 제대로 한번 기폭제가 돼 화두를 던졌으면 바람이다. 그때 이미 겪은 일을 그대로 겪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미 겪은 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병자호란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안 되니까 위정자들과 국민이 함께 영화를 화두로 해서 어떻게 풀어갈까 하는 관심을 갖게 하는게 영화가 할 수 있는 순기능 아닐까.”

이 영화는 황 감독의 아티스트로서의 욕망에서 출발했다. 소설을 통해 비극적 상황에서의 슬픔과 처연함 그리고 그 안에서의 비장미를 발견한 그는 나라의 앞일을 근심하는 두 신하, 최명길 김상헌의 말과 말의 충돌에서 피어나는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논쟁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예전 ‘도가니’(2011) 때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영화 한 편 만들고 전 나라가 그리 시끄러워지며 그 때문에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재수사가 됐다. 그 영화 하나로 법이 20여 개 만들어지고 바뀌었다.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이야기까진 못 하겠고 세상에 작은 화두를 던져 그걸 본 사람들이 바꾸게 되는 그런 역할까진 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게 당시였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려 영화를 만들진 않는다. 영화가 좋아 만든다. ‘남한산성’이 거창하게 역사를 끄집어 내려 하는 목적은 아니다. 순수하게 소설을 읽고 소설에서 그때 벌어진 일들이 너무 처절하고 치열하고 슬펐던 동시에 그들이 나눈 대사가 철학적이고 아름답고 그 안에 기품이 느껴졌다. 처연하고 슬프고 비애가 느껴지고 그 안에서 비장미랄까 그런 것이 느껴졌다. 거기 매료돼 사실 이 영화를 시작했다. 이 영화를 그리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영화로 구현하고 싶은 창작자로서의 욕망이 있었다. 사실 가장 원초적 출발은 거기였다. 그다음이 사회 정치 등을 담는 것이었다. 아름답게 찍으려 많이 노력했다.”

황 감독은 ‘남한산성’이 메시지가 아닌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 말했다. 역사를 돌아보고 질문을 던져 더 나은 현재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가 아니라 질문과 화두를 던지는 영화인 것 같고 그래야 했다. 나도 어느 쪽이 맞았는지 잘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최명길의 화친이 상황에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에게 동시에 그런 질문을 던지면 다른 대답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메시지가 아닌 질문을 던졌으면 한다. ‘380년 전 선조의 잘못을 반복하는 게 아닌가?’ ‘무엇을, 무슨 일을 해야 하나?’하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였으면 한다.”

묵직하고 진중한 이 정통사극에서 영의정 김류와 인조(박해일) 사이의 약간의 신경전에는 유머를 담아 관객이 쉬어갈 곳을 마련했다.

“소설을 읽을 때도 김류와 인조가 나누는 대화에서 미세하게 조크를 주는 것 같아 그 와중에 읽다 ‘피식’ 웃었다. ‘군율이 쉽게 닿겠구나’ 말하는 장면에서 그때 심정이 어땠을까, 인조가 왜 저런 얘길 굳이 어쩌지 못하는 김류에게 던졌을까 했다. 묘한 신경전이 코믹하기까지 한 장면이 두어 개 소설에 있었다. 김류는 악인이라기보다 현실적 기회주의자 이기도 하고 역사를 다 뒤져보면 그의 집안의 악행이 더 많아 그걸 더 투영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신경전, 거기서 느껴지는 유머러스한 면을 통해 영화를 보며 답답해할 관객을 좀 풀어주고 ‘경도 그럼 같이 가라’ 같은 대사를 통해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관객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일각에서는 ‘남한산성’이 ‘웰 메이드’지만 동시에 ‘재미’ 면에서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하는 평을 한다. 이런 평에 대한 황 감독의 생각을 물었다.

“한국영화에서 흔히 쓰던 상업적 장치들, 감정을 더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들을 좀 안 써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 같다. 난 이런 새로운 영화를 관객이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 수준, 그거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 생각한다. 나도 만드는 사람이지만 영화 좋아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내가 그리 목마르게, 잘 만든 외국 영화들, 고급스러운 재미를 가진 영화들을 오래 기다린 관객이기도 하다. 관객도 그러시지 않을까 믿고 기대한다.”

그에게 ‘남한산성’ 이후의 계획을 묻자 “꿈도 계획도 욕구도 없다”고 말했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담기 위해 실내 세트가 아닌 오픈된 공간, 로케이션 세트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4월까지 겨울을 관통하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영화 만드는 동안 너무나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하얗게 불태웠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했죠. 인조의 방에 있던 화로의 재처럼 불씨는 없고 재밖에 없어요. 다음 영화에 대한 아무런 꿈도 계획도 욕구도 없고요. 오래 몸을 요양하며 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화가 잘 되면 맘 편히 쉴 수 있겠고 안되면 좀 그렇지 못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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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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