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 스토리-연기-미장센으로 풀어낸 청춘의 무력감과 분노 [씨네리뷰]
2018. 05.17(목) 14:20
시크뉴스 포토
[시크뉴스 최정은 기자] 이창동 감독이 젊은 세대에게 눈을 돌렸다. 청춘이라는 것이 더는 '희망' '꿈'을 상징하는 세상이 아닌 지금의 막막한 현실은 그의 손을 거쳐 청춘의 '무력감' '분노'로 표현됐다.

올해 제71회 칸 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진출한 ‘버닝’ (제작 파인하우스필름·나우필름)이 17일 개봉됐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연출한 여섯 번째 작품인 '버닝'은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에 이은 그의 다섯 번째 칸 초청작이자 ‘박하사탕' ‘오아시스’에 이은 세 번째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는 배달을 갔다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해미(전종서)를 만나 그녀에게서 아프리카 여행을 가는 동안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벤(스티븐 연) 이라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종수에게 소개한다. 어느 날 벤은 해미와 함께 집으로 찾아와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에 관해 이야기하고, 종수는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Barn Burning)’를 원작으로 한다. 영어 제목이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소설 'Barn Burning'과 같다. '버닝'이라는 제목도 여기서 따왔다.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포크너의 세계와도 연결돼있다.

종수는 분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포크너의 소설 그 자체를 상징하는듯 하다. 그가 포크너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설정 역시 그 같은 생각을 뒷받침한다. 반면 벤은 장난처럼 헛간을 태우는 인물로, 실재하는 인물인지 상징적 인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게 한다. 포크너의 소설은 분노 그 자체를 이야기하는데, 영화에서 종수에게 헛간은 분노의 대상인 현실이다. 희망을 얻기 힘든 현실을 마주한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인 종수는 분노할 대상조차 없어 무력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청년들이 실업 문제와 마주하고 나아질 거란 희망도 얻기 힘든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간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이렇다 할 직업 없이 강남에서 살며 외제 차를 몰고 다니고, 쓸모없는 것을 상징하는 낡은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을 취미라 말하는 벤은 그런 세상을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자유롭고 순수한 청춘의 모습을 한껏 보여주는 해미를 보며 하품을 하는 등 잔인하리만큼 그녀를 비웃는, 혹은 그녀의 꿈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벤에게서 이 시대의 청춘의 절망감을 외면하는 듯 그럴듯하게 잘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신과 비슷한 나잇대에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벤을 보며 의문을 갖던 종수는 그런 벤의 모습을 알아채고 뭔가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마치 자신의 상황과 상관없이 세련되어지고 편리해지는 세상에 대해 분명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어 의문을 품듯이. 뚜렷하게 분노할 대상 없이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종수는 이 세상을 의미하는듯한 '정체불명'의 벤이 비밀을 털어놓자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벤의 비밀은 무서운 현실을, 벤으로 인해 그런 현실을 자각한 종수는 진실을 알기 위해 몰두한다.

'버닝'을 통해 생애 첫 칸 레드카펫을 밟은 유아인은 이창동 감독의 디렉션에 따라 전작에서 보여준 연기와는 달리 연기에 힘을 뺐지만 여전히 모든 행동과 감정을 하나하나 표현하려 하는 섬세함이 느껴진다. 신비로운 마스크의 신예 전종서는 설경구 문소리를 발굴한 이창동 감독이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한 신예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지난 2016년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수위 높은 노출로 관심을 모은 김태리는 데뷔작으로 칸에 입성했다. 전종서 역시 데뷔작 '버닝'의 파격 노출신이 관심을 모으며 주목을 받았고 이 데뷔작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아 김태리와 비슷한 행보에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영화에서 전종서는 외모와 목소리 연기에서 모두 개성이 느껴진다. 종수와 해미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인물인 벤을 연기한 스티븐 연은 실존하는 인물인지 가상의 인물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그의 묘한 눈빛과 비열한 웃음소리가 긴장감을 준다.
티브이데일리 포토


영화는 훌륭한 미장센을 자랑한다. 세트에서 연결된 하늘, 주위에서 보이는 풍경과 자연을 미장센으로 활용하는 이창동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만들어낸 결과다. 파주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발견해 그곳에 종수의 집을 지었다. 자연광으로 노을을 찍을 시간은 하루 단 20분밖에 허락되지 않았지만 끈질긴 기다림으로 조명 없이 담은 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어두워서 절망하는 청춘을 둘러싼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야 하지만 남산이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해미의 집도 아르바이트로 카드빚을 갚지만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는 해미의 현실과 낭만적인 성격을 동시에 보여준다. 서래마을에 있는 벤의 집 또한 부족할 것 없지만 집 외관만으로는 그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점을 반영한다.

인물의 심리상태에 따라 변화하는 카메라 워킹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전작에서 의도적으로 음악을 절제해 왔지만 '버닝'에서는 음악도 자기주장을 하도록 했다는 이창동 감독의 말처럼 음악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 음악은 긴장감을 더하는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노을 진 풍경에서 흘러나오는 재즈풍의 음악은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져 강하게 장면을 보다 풍성하게 완성한다.

현실 세계를 다시 한번 둘러보게 하는 이 영화는 결말을 통해 젊은 세대의 욕망 혹은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듯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17일 개봉. 러닝타임 147분. 청소년 관람불가.

[최정은 기자 news@fashionmk.co.kr / 사진=영화 포스터·스틸컷]
기사제보 news@chicnews.co.kr

이슈포토

알듯 모를 듯 커플룩
로맨스 위 브로맨스
트렌치코트 딜레마
천차만별 남자슈트
센치한 블라우스
어깨 슬쩍 오프숄더
팬츠슈트 vs 스커트슈트
데님 핫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