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예퍼즐] 자기모순에 빠진 춘사영화제
2018. 05.21(월) 12:03
시크뉴스 포토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본상 시상식에서 무관에 그친 결과를 두고 영화팬들의 실망이 크다. ‘버닝’은 지난 16일 영화제에서 첫 공개돼 현지 평론가들의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관계자는 물론 국내의 영화팬들은 내심 시상식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상 결과의 반응에 대해 한 평론가는 “책 한 권 구입하지 않으면서 노벨문학상을 기대하고, 예술영화를 외면하면서 국제영화제의 그랑프리를 기다리는 꼴이다”라고 비꼬았다. 예술영화가 많이 제작되고, 관객의 사랑을 받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그 힘이 국제영화계에 전달될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극장가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가 개봉 19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넘어선 반면 이창동이란 유명감독에 유아인이란 걸출한 배우, 그리고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가능성까지 입소문을 탄 ‘버닝’은 개봉 첫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하루 7만 관객을 겨우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관객 1백만 달성도 어렵다는 전망이다.

굳이 칸영화제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국내 영화인들 사이에서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은 최근 들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국내의 유명 영화제나, 전통을 내세운 영화상들에서 예술영화가 돋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폐막된 전주국제영화제는 저예산 독립·예술영화제로 자리를 굳혔다. 이 영화제는 올해 한국경쟁부문 대상작으로 고작 3천여만원의 제작비가 소요된 정형석 감독의 독립영화 ‘성혜의 나라’를 선정했다.

이 추세에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춘사영화제도 발을 맞췄다. 경쟁부문상의 상당수를 독립 예술영화에 할애했다. 지난 1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춘사영화제는 10개 경쟁부문 가운데 여우주연상 김선영 ‘소통과 거짓말’, 신인여우상 최희서(박열), 신인남우상 오승훈(메소드), 각본상 신연식(로마서 3:18) 등 4개 부문을 저예산 독립영화에게 수상했다.

춘사영화제는 “현시적 상업주의 성향을 극복하고, 춘사 나운규의 영화정신인 창의성, 예술성, 그리고 민족성을 고유한 선정근거로 내세움으로써 한국영화의 미래를 여는 젊은 영화제로 도약하고자 한다.”라고 영화제의 성격을 명시했다. 이에 따라 다수의 수상 작품이 저예산 독립영화에 할애된 것으로 보인다. 바람직한 발전 방향이다. 그래야 돈 많이 드는 ‘부자들의 영화’가 아니라 ‘가난한 영화인’이 돈 조금 들여서 만드는 영화도 극장에서 관객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

모든 저예산영화가 관객에게 외면 받지는 않는다. 문제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만드는 영화작가들의 의식의 전환에 있다. 종종 영화감독들을 ‘예술’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어 놓아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같은 궤적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는 다르다.

나홀로 고립된 상태에서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칠 수 있는 문인이나 미술가들에 비해 영화감독은 좀 더 현실적이어야 하고, 관객 또는 세상과 타협적이어야 한다. 이미 세상에 공개된 작품은 수정이 불가능하고, 설혹 수정이 가능하다고 해도 ‘버스 지나가고 손들기’이다. 영화는 극장(상영관)에서 다수의 관객에게 상영되고 보여질 때야 비로소 생명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감독들(특히 독립영화 또는 예술영화감독들)은 현실과 타협한다는 말만 나오면 과민하게 반응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무주의 맹시(無注意 盲視, Inattentional Blindness)’현상 중 하나이다.

춘사영화제를 주최한 한국영화감독협회는 영화감독의 이익단체이다. 협회도 그렇지만 영화감독들은 가난하다. 한 작품 연출비가 수억원에 이르는 부자 감독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감독은 끼니를 걱정할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한다. 그들에게 남은 재산은 ‘자존심’ 하나뿐이다. 영화감독에게 정년이 있을 리 없지만 평생 한 두 작품 연출하고 여태껏 영화감독이란 타이틀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부지기수이다.

이들 가난한 선배 감독들은 자신의 가난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자존심’의 결과라고 말한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선배들의 무용담을 과장되게 재생산하여 청빈하고 고고한 이미지로 덧칠한 결과 동시대의 많은 영화감독들 역시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잘못된 기대는 심각한 병리적 현상이며, 영화의 본질적인 모습보다 영화감독의 초인적인 모습만 닮으라고 강요하는 희망과 망상의 위태로운 교집합이다.

과거 ‘잘 나가던 감독’이었지만 집 한 칸 없이 살고 있는, 또 그렇게 세상을 떠난 유명 감독의 삶이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청빈한 삶’이라는 주장은 위선이고 허망하다. 이 왜곡에 가까운 오해는 지금을 살아가는 후배 영화감독들에게 자기 몫을 주장하지도 챙기지도 못하게 하고 예술적 행위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감정 노동의 대상으로 전락시켜버리고 말았다.

어떤 경우든 굳이 세상과 타협이 필요치 않은 경우를 제외하고, 영화를 하고자하는 감독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좋던 싫던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과 타협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영화감독들을 봐야 엉킨 실타래 같은 얘기가 풀린다. 밑도 끝도 없는 예술영화 얘기만 하다가는 예술감독들 하나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고고한 예술도 허기진 예술가의 배부터 채워 줘야 나온다.

춘사영화제는 일단 가난한 영화감독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노력한 것은 분명하다. 좋은 시상식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자세’가 나오는 상을 받고, 배우들에게 “고맙다”는 무대 인사도 받았다. 하지만 그 방법은 매우 비열했다. 춘사영화제의 시상식에는 적잖은 경비가 소요된다. 하지만 한국영화감독협회의 재정은 열악하다. 정부나 관련 단체의 지원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외부 단체나 기업에 후원을 요청하고 이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장면이 수차례 연출됐다.

수상자와 시상자는 짝패다. 시상자는 수상자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상자가 이 영화제를 후원한 기업의 대표들, 개중에는 ‘듣보잡’ 기업의 예의 없는 대표들도 시상자로 나섰다. 한 원로감독은 “가난한 영화감독으로 남는 것이 낫지 돈으로 시상 자격을 얻은 사람에게 상을 받아야 하느냐”라고 탄식했다.

경제력을 쥐고 있는 계층에서 저예산 독립 예술영화를 지원하는 이 역학적인 관계는 영화감독협회와 춘사영화제의 ‘자기모순’이다. 정작 자금력이 확보된 영화계의 메이저 멤버들이 춘사영화제를 외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몇 편의 예술영화에게 상을 주었다 해서 춘사영화제가 이른 시기에 ‘젊은 영화제’, ‘예술영화제’가 되지는 않는다. 춘사영화제의 올바른 해체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땅에서 영화를 희망으로 살아가는 젊은 영화인들이 실현 가능한 꿈을 꿀 수 있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들의 영화는 예술적인 '취향'이지만 그들의 삶은 계산된 '지향'이기를 바란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사진=춘사영화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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