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연예퍼즐] 비루한 탐욕이 빚어낸 TV드라마의 핏빛전쟁
2018. 05.28(월) 10:27
시크뉴스 포토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드라마 전쟁이 치열하다. 싸움이 붙은 이상 이겨야 한다. 그것이 전쟁의 공식이다. 그래서인가, 요즘 드라마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여기저기 주검이 널브러져 있다. 왜 저렇게 수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지 시청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많이 죽여야만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것인지 경쟁하듯 사람의 목숨을 거둬간다. 종편과 케이블방송은 물론 지상파까지 이 살육의 현장에서 ‘살인 잔치’를 벌인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살인’은 중범죄이고, 법률에 따라 그 대가를 엄격하고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 이를 위해 판사 검사 변호사 같은 법조인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 필요하고, 수사관계자들의 노고가 뒤따라야 한다. 이처럼 당연한 사리가 요즘 드라마에서는 통 볼 수가 없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법조드라마와 수사물이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슈츠’(KBS2), ‘검법남녀’(MBC), ‘무법 변호사’(tvN)가 방송 중인 가운데 5월 셋째 주 ‘스위치-세상을 바꿔라’(SBS)가 종영되더니, 넷째 주인 지난주에는 JTBC에서 ‘미스 함무라비’와 ‘스케치’를 등장시켜, 법조 수사물 전쟁에 가세했다.

법조수사물은 ‘장르드라마’ 중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 ‘장르드라마’는 드라마에서 다루는 이야기의 성격, 드라마에 주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 의미 있게 쓰이는 노래 따위가 일관된 색깔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현재 방영되는 법조수사물 대부분은 뒤죽박죽 장르를 규정하기에 애매하다. 멜로드라마인지, 액션물인지, 공포물인지, 코믹드라마인지, 무협드라마인지 시청자는 헛갈린다. 비빔밥 드라마로 시청률만 높이면 된다는 제작진의 비루한 탐욕이 드러날 뿐이다.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의 가장 큰 요소는 갈등 구조에 있다. 갈등 구조가 엉성하게 짜이면 그 드라마는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모든 드라마는 갈등 구조를 촘촘하게 만든다. 때로는 촘촘함이 지나쳐, 그것은 ‘갈등의 극대화’로 나타나는데, 의욕이 지나치면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로 비쳐진다. “말도 안 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최근의 법조수사물이 실망스런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귀중한데, 화면 곳곳에 주검이 나타나고, 민주사회의 근간이 되어야할 법치주의는 실종 직전이다.

‘무법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안오주 회장(최민수)은 수많은 살인의 원흉이다. 봉상필 변호사(이준기)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고, 증거물을 갖고 있는 제보자를 공사장 건물 아래로 그냥 밀어버려 죽인다. 그런데도 정치판에 뛰어들어 호령을 일삼는다. 그의 뒷배는 차문숙 판사(이혜영)인데, 과연 이런 판사가 현실에 존재할까 믿어지지 않는 대표적 법치주의 파괴자다. 곳곳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법의 잣대는 제멋대로 춤춘다.

‘스케치’는 첫방에서부터 위장 자살자가 나타나고, 연쇄 살인범이 등장한다. 시작부터 수차례 살인이 이뤄지고 있다. 그 피해자 중 한사람은 경찰 강동수(비)의 약혼자 민지수(유다인)이다. 민지수의 직업은 검사다. 물론 이제 드라마 초반이니 회를 거듭하면서 납득할만한 ‘살인의 이유’가 밝혀지겠지만, 시작은 핏빛으로 장식됐다.

여성 검사의 유쾌한 활약상을 그린다는 ‘검법남녀’도 예외는 아니다. 피해자를 부검하는 괴짜 법의학자 백범(정재영)과 가해자를 수사하는 초짜 검사 은솔(정유미)의 특별한 공조가 기둥 줄거리인데, 매 회 시체가 등장한다. 모두가 억울한 주검이다. 심지어 ‘부관부검’(剖棺剖檢)도 보여준다.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라지만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방송중인 법조수사물은 대부분 ‘15세 이상 시청가능’ 드라마이다. 하지만 이 규정은 강제할 환경이 아니다. 어린 시청자의 시청을 막을 방법은 있는가. 결국 드라마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청소년 시청자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질는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만연된 인명경시 풍조와 무너지는 법치주의를 경계해야할 때이다.

이들 드라마의 초기 화면에는 하나같이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법의 여신상’(정의의 여신상)이 등장한다. 이 법의 여신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눈을 감고 있거나 가리고 있다. 재판 받을 사람을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의 여신은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어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을 지키는 모든 이에게 상을 내리는 것 보다 법을 어기는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라고 말한다. 법치주의 골격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법이란 저울 위에 죄와 벌을 놓고 그에 따라 칼을 들겠다는 거다. 그리고 법이 칼을 들기 전, 저울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위해 판사와 검사 그리고 변호사라는 존재가 허락됐다. 법조계가 이런저런 사건으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는 요즘이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법조계의 치부는 정도에 지나치다.

드라마가 다루는 죽음의 문제는 무너지는 법치주의보다 더 심각하다. 소설가 정찬은 그의 신작 소설집 ‘새의 시선’ 출판 인터뷰에서 “예술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진실이 묻힌 억울한 죽음’을 예술 작업을 통해 밝혀주는 일이 예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소설 ‘새의 시선’은 TV의 법조수사물보다 죽음이 더 흥건하다. 소설 속의 죽음은 개별적인 자연사나 사고사보다 ‘사회적인 죽음’이다. 세월호가 직간접적으로 다뤄지는 단편소설이 전체 일곱 편 중 세 편(‘사라지는 것들’ ‘새들의 길’ ‘등불’), 표제작 ‘새의 시선’은 2009년 용산 참사와 1986년 서울대생 김세진·이재호 분신사건의 트라우마를 정교하게 연결한 작품이다.

방송중인 수사법조물의 ‘묻지마 죽음’과는 ‘새의 시선’이 다루는 죽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TV드라마도 대중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대중예술의 한 장르라고 인정된다면, 정찬 소설가의 “예술이 가진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다.”란 지적을 방송 관계자들은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는 저마다 생각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같은 걸 보고도 다른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당연한 것 같다. 모두가 똑같이 본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일방적이거나 일면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우려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비판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유연한 사고가 아닐까? 이제 TV드라마의 ‘비루한 탐욕’은 멈춰야 한다.

[시크뉴스 윤상길 칼럼 news@fashionmk.co.kr/ 사진=tvN '무법 변호사', MBC '검법남녀', SBS '스위치-세상을 바꿔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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